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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지현
- 목차 : 케이티_오프닝북_리스트
“블러디 메리 한 잔!” “아메리카노에 보드카 더블로 줘봐!” 장난기 가득한 주문이 쏟아졌다. 케이티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열심히 음료를 만들어 나르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술을 쏟기도 했지만, 러너들은 그냥 재미있다는 듯 웃어넘겼다.
“야, 쟤 재생사라면서? 그런 능력자는 처음 아냐? 너 들어본 적 있어?” 옆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러너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맞아. 새우거리에서 왔대. 거기 이야기해주는 게 엄청 재미있어.” “오! 새우거리! 나도 거기 한번 가봐야 하는데. 하하하하하“ 술 취한 채 키득거리는 그들을 보며 케이티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떤 소리를 듣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운 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뿐이었으니까.
“아, 죄송해요!” 쟁반에 가득 실은 잔을 옮기다 그만 앞에 있던 여자와 부딪치고 말았다. “괜찮아요. 케이티 씨 맞죠? 전 지현이에요.”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그녀가 의외로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지현은 짧은 흑발에 날렵한 체형을 가진,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짙은 아이라이너는 그녀의 예리한 인상을 더욱 부각시켰다. “네, 반가워요. 서빙은 처음이라 많이 서툴러요.”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케이티 이야기뿐이라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재생사라면서요? 대단한데요? 러너들 사이에선 꽤 희귀한 능력이에요.” “아, 네… 뭐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할 줄 아는 거라서…”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케이티를 보며 지현은 묘한 눈빛을 보냈다. 초기의 자신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시절, 순수했지만 아직 각박해지지 않았던 그 시절.
잠시 뒤, 일이 끝나고 술잔을 닦던 케이티에게 지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혹시 팀에서 하는 의뢰에 관심 없어요? 우리 팀이 마침 심상 재생 능력이 필요한데, 케이티 씨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의뢰요? 저 같은 초짜가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죠. 그리고 케이티 씨, 당신은 특별한 재능을 가졌어요.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에요.” 지현의 말에 케이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지현 씨. 제가 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볼게요.”
지현의 말에 케이티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의 그녀라면 상상도 못 했을 대답이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세상을 향한 도전 의식.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설렘과 두려움. 케이티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뢰라는 말에 케이티의 마음 한편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아직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저 호기심에, 설렘에 이끌려 뛰어든 것뿐인데.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현은 그런 케이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차가운 손과 따뜻한 손, 묘한 조화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괜찮아요.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할 거니까. 우린 팀이거든요.” 그 한마디에 케이티의 마음이 놓였다. 지금까지 만난 러너들은 모두 혼자였다. 러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혼자서 위험한 뭔가 한다는 것은 막연한 공포 그 자체였다. 이 미지의 공포를 함께 맞서 싸울 동료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되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고 클럽은 창을 내렸다. 레드 네온사인이 꺼지며 어둠이 짙게 깔렸다. 케이티는 레드 몽키즈 백룸 중 크리스에게 지정받은 방의 침대에 누웠다. 방 안에는 오래된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구석에 켜져 있었다. 바깥의 소음이 희미해지자, 케이티는 고요한 방에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새겼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케이티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너머 펼쳐진 와치벨 도시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자신의 무대로 느껴졌다. 하늘에는 드론들이 떠다니며, 멀리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위험과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 두려움에 떨던 자신이 이제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