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실버 골드
빅포레스트 거리의 심장, “아이언 러너전”. 한때는 러너들의 성지였다. 수천 개의 홀로그램이 쏟아내는 네온 빛 속에서 거대한 전광판이 하늘을 찔렀다. 계약이 성사되고, 총알이 오가고, 빚을 갚지 못한 자들은 장기를 헌납하는 곳. 어떤 이들은 마지막 남은 전투 임플란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이번엔 다르다”며 생체 데이터를 저당 잡혔다. 러너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담보로 도박을 벌였고, 길드 리더 그리즐리는 그들의 신을 자처했다.
거래소 입구의 AI 마스코트는 24시간 내내 웃으며 외쳤다. “러너전은 안전합니다! 당신의 신뢰도는 93.2%입니다!” 신뢰도가 떨어질 때마다 러너들은 더 많은 것을 담보로 맡겼다. 주식이 오르면 신뢰도도 올랐고, 신뢰도가 오르면 주식은 더 올랐다. 완벽한 영속 시스템이었다.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자는 없었다. 다만 그의 디지털 서명은 모두가 알았다. 붉은 데이터의 흔적, 피처럼 번지는 코드. 0과 1로 이루어진 서명이 찍힌 계약은 곧 절대적 신뢰였다. 러너들은 그 디지털 피의 흔적을 맹신했고, 아이언 길드는 번영했다. 투자 설명서에는 “영원한 번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언 러너전 신뢰도 지수 7% 하락!” “걱정 마십시오! 더 낮은 가격에 투자할 기회입니다!” “아이언 러너전 임원 3명 지하도시 도주!” “기회는 지금입니다! 프리미엄 투자자를 위한 특별 물량!” “아이언 러너전 담보 데이터 연체율 89% 돌파!” “지금이 바로 올인할 타이밍입니다!”
거래소의 전광판이 미친 듯이 깜박였다. 숫자들이 붉게 물들며 비명을 질렀다. AI 마스코트는 계속해서 웃으며 “러너전은 안전합니다!”를 반복했다. 마스코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동안에도, 새로운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그리고 결정타가 터졌다.
미모대사국 특수부대가 그리즐리의 은신처를 급습했다는 생중계 영상. 불법 생체 데이터 거래, 자금 세탁, 데이터 조작.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에서 러너전 데이터칩이 흩어졌다. 영상은 선명했다. 저항하는 총성. 이어지는 침묵.
뉴스 중간에 러너전 광고가 흘러나왔다. “지금 가입하시면 300% 보너스! 평생 무료 거래!”
파산한 러너들의 데이터들이 압류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데이터는 새로운 투자 상품이 되어 거래소에 상장됐다. “프리미엄 러너 조직 지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그때, 실버 길드가 나타났다.
“아이언 러너전 보유자 전원에게 100:1 보상! 우리와 함께라면 당신의 투자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군중은 환호했다. 구원자가 나타난 것이다. 보상은 새로 설립된 “골드 러너전” 으로 지급된다고 했다. 모두가 그것이 아이언 러너전과 같은 회사란 걸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신뢰였다.
실버 길드는 전설이 되었고, 아이언 길드는 역사가 되었다.
최고급 시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실버 길드장이 중얼거렸다. “신들은 죽지. 하지만 믿음은 영원하지.”
그의 책상 위에는 여러개의 액자들이 기념비처럼 늘어져 있었고 가장 오른쪽은 그리즐리의 모습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신의 흔적.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믿어야 하니까.”
그날 밤, 빅포레스트의 네온 물결 위로 새로운 간판이 솟았다.
“뉴골드 러너전 거래소 - 당신의 믿음을 수치화하세요!”
러너들은 파산한 동료들의 데이터로 만든 선물 상품을 담보로 새로운 투자를 시작했다. AI 마스코트는 새로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다릅니다! 당신의 신뢰도는 100%입니다! 2배 더 강화된 최신 첨단 시스템을 믿으세요!”참고 설정
✅ FEWK의 화폐들: 대사만국 시대 이후 FEWK국에는 100개가 넘는 화폐전이 존재하며, 1시간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오얏전부터 국가화폐인 대사전, 종교화폐인 신성전, 직업별 실물전까지 다양한 화폐가 각자의 영역에서 통용된다. 화폐전은 일상 물건이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때 '전(錢)'을 붙여 부르며, 대부분 특정 직업군이나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특수 화폐의 성격을 띤다.
✅ 러너전(Runner Exchange): 러너들이 생체 데이터, 전투 임플란트, 계약 등을 거래하는 금융 플랫폼. 신뢰도 지수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투자와 도박이 혼재된 형태.
✅ 생체 데이터 담보(Bio-Data Collateral): 러너들이 자신의 신체, 전투 기록, 신경 패턴 등을 금융 상품으로 활용하는 방식.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데이터는 강제로 매각되며, 일부는 클론 개발 및 AI 트레이닝에 사용됨.
✅ 미모대사국: 강력한 파이오니아 부대를 보유한 군사 중심 국가로, 다른 대사국들과 달리 직접적인 자원 수탈보다는 군사력과 연구 개발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제제의 콜로세움 연구소와 파이브헌드레드 캐치먼트의 군사연구소를 운영하며, 주로 대규모 팀 단위의 러너 임무를 의뢰한다. 서울 서부에 위치한 단일 대사관을 통해 파이브헌드레드 지역을 관할한다.
✅ 빅포레스트 거리(Big Forest Street): 물질계에 위치하면서도 인공계와 결합된 독특한 공간으로, 각 도시의 러너 카페와 클럽 게이트를 통해 접근 가능한 러너들의 중심지다. 리버힐의 플레인즈에 위치한 이곳은 실제 육체로만 방문할 수 있으며, 가장 작은 카페의 뒷문조차 드넓은 훈련장, 사격장, 목장이 있는 인공계로 연결된다. 수많은 길드와 금융 거래소가 밀집해 있어 러너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대사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 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