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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_노동계약

수호사의 노동 계약서

대령국 대사관에서 발표한 구인 공고는 간단했다.

[대사관 직속 수호사 모집]

계약 완료 후 퇴직 보장

대사관 철거 대상 처리 임무

광전 지급 + 숙식 제공

철거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지만, 대개 이런 작전은 단순한 이주 지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고객은 절대 안전합니다.’라는 문구는 오히려 신뢰를 주었고, 계약 조건도 명확해 보였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서명했다.

그러나 몇 주 후, 나는 구미성으로 가는 수송선을 타고 있었다. 목적은 '구미성 철거' 작전이었다.

“철거라니, 여기가 그냥 폐허 아닌가요?” 나는 상관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남아 있는 거주민들이 있어.”

내 등 뒤에서 드랍아웃 드론이 차례로 배치되고 있었다. 보통 대피 유도용으로 쓰이는 드론이지만, 대령국이 쓰는 드론은 ‘거부자 처리 기능’이 탑재된 버전이었다.

이 작전의 진짜 의미는 ‘철거’가 아니라 ‘완전 소멸’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구미성은 원래 기업 주도 부동산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기업이 도산한 후, 소각전송 기술이 도입되면서 이곳은 대형 폐기물 투하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왜 떠나지 않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상관이 말했다.

“계약 조건 기억하지? 구미성 내 모든 인원을 철거해야 해.”

나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드랍아웃'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사실상 제거와 다를 게 없었다. 보통 존재들은 이 차원에서 죽으면 물질계에서 깨어나지만, 구미성 네이티브들은 달랐다. 그들은 진짜로 소멸했다.

나는 순간 반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약서는 이미 체결되었고, 이를 어기면 나 역시 드랍아웃 대상이 될 터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굴복했고, ‘철거’를 수행하기 위해 지도를 최대한 확대해봤다.

그리고 그때, 계약의 악독함을 깨달았다.

구미성은 단순한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지도는 한없이 확대되었고, 수천 층의 복층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미궁이었던 것이다.

나는 멍하니 지도를 바라보았다. 이 계약을 끝내려면 이 끝없는 미궁을 누비며 모든 존재를 철거해야 한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탈출을 고민했지만, 탈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약에 묶인 이상, 나는 끝없이 사냥을 지속해야 했다. 한숨을 내쉬며 철거 대상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도가 끝없이 펼쳐치는 동안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수호자_노동계약.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2/13 07:38 저자 whtdr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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