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공셀, 오늘도 펑!”
노마드 시장의 밤하늘에 깜빡이는 홀로그램 간판이 시야를 채웠다. 형광등이 깜박이는 천막 아래, 낡은 작업대 위로 재활용된 흑공파워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대충 쥐어뜯은 외장, 멋대로 붙여진 배선, 불안하게 깜빡이는 경고등. 내 손에는 정체불명의 '민간파워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건 십만셀이 아니고, 그냥 폭탄 아닌가?”
나는 한숨을 쉬며 파워셀을 기울였다. 안에 담긴 흑공정제용액이 묘하게 걸쭉했다. 중화제와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채 현화 억제가 불완전한 상태였다. 십만셀 안에 백만셀 분량을 쑤셔 넣은 오버차지 버전. 이런 건 한 번 점화하면 충전은커녕 그 자리에서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펑!” 하고 끝나는 물건이었다.
“한번 써봐. 터지지만 않으면 진짜 잘 나가.”
건너편에서 이걸 판 노마드가 싱긋 웃었다. 얼굴 절반을 가린 보호안경에는 깨진 흔적이 가득했다. 분명 자신이 만든 파워셀이 터지면서 생긴 상처일 터다. 하지만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었다.
“이 셀은 '퓨어로열' 지역에서 분출한 흑공으로 개조한 거야. 확실해. 네가 찾던 '특별한 정보'도 이 안에 있을지 모르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노마드는 단순한 밀거래상이 아니었다. 그는 흑공 분출 지점에 대한 정보를 가진 자들 중 하나였고, 나는 그 정보가 필요했다.
노마드 '데쉬'가 작업장 구석에 있던 폐기된 천만셀을 가져왔다. 1리터 우유팩 크기의 검댕이 잔뜩 묻은 셀. 바닥에는 땜질 흔적과 함께 “절대 열지 마시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전불감증의 노마드가 씌워놓은 바깥 한겹 금속 케이지가 이 셀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 흑공분출 때 채취한 걸로 만든 건 사실 이게 전부야. 원래 만만셀짜리 크레인용인데, 몇 개 터지고 남은 거지.”
그의 말대로라면 이미 몇 대의 크레인이 시공간 왜곡에 휘말려 증발했다는 소리다. 내심 불안해졌지만, 이미 이곳까지 온 마당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낡은 드릴을 꺼내 튼튼한 금속 케이지로 봉인된 셀을 열었다.
순간, 안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빛을 빨아들이는 촉수가 되어 허공을 더듬었다.
“이봐! 질질 새고 있잖아!”
노마드가 황급히 뒷걸음질쳤다. 나는 재빨리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늦었다. 흑공은 이계의 존재로 변모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그때 노마드가 호주머니에서 형광색 비닐 팩을 꺼냈다. 시장에서 유명한 '뇌진탕 슬러시'였다. 전해질과 합성 각성제가 뇌를 마비시키는 음료수.
“이거 한 모금 빨아.”
나는 망설임 없이 입을 대고 빨았다. 형광빛 점액질이 혀 끝에서 푸르게 번쩍였다. 순간 뇌가 마비되며 현실 감각이 무뎌졌다. 필름이 끊어지는 느낌. 인간의 상상력에 반응하는 흑공의 현화를 막기 위한 노마드의 생존비책이었다.
펑!
푸르스름한 충격파가 천막을 휩쓸었다. 작업대 위의 도구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순간적으로 생성된 작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고,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시간과 공간이 섞인 냄새.
폭발이 잦아들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천막이 공중에서 접히고 구겨지더니, 그림자처럼 번져 사라졌다. 노마드의 머리카락은 반쯤 타버린 상태였다.
“역시 터졌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는 멍하니 타버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태연하게 슬러시를 빨았다. 형광빛 점액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입술에 묻은 형광빛 액체를 혀로 핥고는,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니잖아’라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의 혀끝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재미있잖아?”
나는 대답 대신 검게 일렁이는 흑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정보를 떠올렸다.
언젠가는, 이 위험한 거래가 내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참고 설정
✅ 흑공(Tenebrae): FEWK 세계관에서 발견되는 이계적 에너지원으로, 강한 중력과 공간 왜곡을 일으키며 통제되지 않을 경우 현실을 침식하는 특성을 가진다.
✅ 흑공파워셀(Tenebre PowerCell): 배터리이자 물질 생성을 위한 재료가 합쳐져있는 패키지. 흑공을 정제하여 저장한 에너지 셀. 단위는 ‘셀’로, 1만셀은 흑공정제용액 1g에 해당한다. 안전한 정제가 필수이다.
✅ 현화(現化, Manifestation): 흑공이 생명체 등과 결합하여 일어나는 이상 현상. 불완전하게 정제된 흑공이 생명체와 반응하여 형태를 갖추는 과정. 예측 불가능한 변이가 일어나며, 때때로 감각적 환각을 유발한다.
✅ 민간파워셀(Black Market PowerCell): 공식적인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흑공파워셀. 폐기된 셀을 재활용하거나 불법 개조하여 만들어지며, 정상적인 셀보다 강력하지만 폭발 위험이 크다.
✅ 노마드 시장(Nomad Market): 정부나 대기업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 무역지구로, 불법 개조된 장비나 금지된 기술이 거래되는 공간.
✅ 퓨어로열(Pure Royal): 흑공 분출이 심했던 구역 중 하나로, 강한 공간 왜곡과 시공 불안정성 때문에 폐쇄된 지역. 높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탐사자들은 그곳에서 귀중한 데이터를 얻고자 한다.
✅ 뇌진탕 슬러시(Brainshock Slushy): 강한 전해질과 합성 각성제를 혼합한 음료. 뇌신경을 일시적으로 차단하여, 흑공과 접촉할 때 발생하는 현실 왜곡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 이계 변질(Interdimensional Corruption): 흑공과 접촉한 물질이 기존의 물리 법칙을 벗어나 변형되는 현상. 극단적인 경우, 특정 공간 자체가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 흑공 폭발(Void Detonation): 흑공이 불안정해지면서 발생하는 폭발. 일반적인 폭발과 달리 중력 왜곡과 공간 붕괴를 수반하며, 주변 사물을 ‘삭제’하는 특성이 있다.
✅ 데쉬(Dash): 노마드 시장의 밀거래상으로, 흑공 관련 불법 개조 및 밀수를 전문으로 한다. 수많은 사고로 인해 얼굴 곳곳에 화상과 흉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