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오니아의_수덕
- 파이오니아 부대의 수덕
- 수덕은 3년째 출격 대기 중이었다.
- 오지 차원계 개척을 위한 파이오니아로 선발된 그는, 언제든 출격 명령이 내려오길 기다리며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엔 불안과 설렘이 공존했다. 오지 차원계 개척이란 단순한 탐사가 아니었다. 미개척지를 정복하고, 인류가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드는 전위대. 차원이동 중 주파수 동기화에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소멸될 수도 있고, 뇌네 보정을 수행하지 못하면 현실 감각을 잃고 코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그는 전설이 될 것이었다.
- 매일 아침, 수덕은 시스템에 자신의 ID를 입력했다. [파이오니아 #3472, 대기 상태: 정상] 이 문구가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 마치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현대에 와서 “나는 로그인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변한 것처럼.
- 최초의 개척자들은 개척이 아니라 '정복'을 했다고 불린다. 오지 차원계의 생명체들은 인간과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했고, 그곳에 들어간 파이오니아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했다. 문제는 '뇌네 보정'이 발견된 이후였다. 이 기술을 통해 오지 차원계에 들어간 개척자들은 처음으로 그곳이 지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괴물'이라 부르며 죽였던 존재들이 실은 그저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걱정도 없다. 뇌네 보정이 정착된 후, 개척 과정은 훨씬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더는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니라, 탐사와 분석을 기반으로 한 개척. 그럼에도 여전히 위험한 임무였다. 실종된 파이오니아들의 기록은 언제나 검게 가려져 있었다.
- 6개월 전부터 수덕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스템에서 자신의 과거 기록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훈련 기록이었다. 다음은 건강검진 기록.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지워졌다. 동료들은 그를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것처럼.
-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호출이 왔다.
- 수덕은 희미한 기대를 품고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 “승진했다.”
- “…네?”
- “대기 상병으로.”
- “…그게 무슨 의미죠?”
- “이제 대기 명단에서 좀 더 우선순위가 높아졌다는 뜻이지. 그리고 축하해, 대기 총괄로도 임명됐어.”
- 대기 총괄의 임무는 다른 대기자들의 대기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무도 없는 대기실의 관리자가 된 것이다. 매일 아침 빈 자리를 점검하고, 존재하지 않는 대기자들의 상태를 보고해야 했다.
- 일주일 후, 수덕은 자신의 ID로 더 이상 로그인할 수 없다는 걸 발견했다. [오류: 해당 사용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 인식이 뇌네 보정처럼 왜곡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차원 이동에 실패해 소멸된 것인지도 모른다.
- 결국, 수덕은 무장탈영을 감행했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뚫고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기지를 빠져나갔을 때, 감시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이틀 뒤, 그는 자신을 쫓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본부 기록을 해킹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 6개월 후.
- 유명한 전투 러너팀 '고스트 헌터스'의 대장으로서 명성을 날리던 수덕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 “미모국 파이오니아 상병 수덕에게 복귀 대기 명령을 내린다.”
파이오니아의_수덕.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2/13 14:41 저자 whtdr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