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아르바이트
- 목차 : 케이티_오프닝북_리스트
크리스는 케이티에게 묵을 곳을 마련해주라고 따로 지시하고는 모두를 내보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뜬금없던 의뢰의 퍼즐이 지금 우연히 맞춰진 것이다. (주)신성, 비밀임무, 무언가 일어난 사태, Z, 케이티.
크리스는 천천히 미소를 머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일이 생긴 듯했다. 아직은 막연했지만 크리스의 감이 이게 분명 대박일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주)신성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는 기회가 반가웠다. 크리스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어냈다. 연기가 천천히 흩어지며 마치 미궁 속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처럼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재미있어질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크리스의 푸른 눈동자가 흥미로운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주)신성의 공단계에서의 실패는 아직도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때의 패배감과 자괴감이 뼈아프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통해 그 모든 한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벽에 기대어 선 크리스는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끝없는 배신과 좌절, 그리고 반복되는 실패의 순간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지탱해준 불굴의 의지와 정의감도 떠올랐다.
'난 아직 죽지 않았어.'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마즈는 또 훌쩍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고 케이티는 그렇게 홀로 남아 며칠째 레드 몽키즈 클럽에서 무위도식하던 중에 나름 큰 맘을 먹고 크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 저 레드 몽키즈에서 홀 서빙 좀 해보고 싶은데요.”
술잔을 닦던 크리스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케이티를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존재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왜 갑자기? 자넨 우리 손님이잖아. 그런 일 안 해도 돼.”
“단순히 서빙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케이티의 눈빛에는 확고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크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결심인데… 정말 해보고 싶은 거야?”
“네. 이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요. 저를 믿어주세요.”
크리스는 케이티의 단호한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이 댄디하게 느껴졌다. 크리스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흠, 그래. 해보고 싶다면야 말릴 순 없지. 대신, 오늘 손님들이 많이 오면 팁은 내가 챙겨줄게. 어때?”
“됐어요. 제가 벌어서 낼 수 있으니까. 어차피 저도 한 잔 하고 싶어서요.”
씩 웃으며 케이티가 크리스의 어깨를 툭 쳤다. 그 모습에 크리스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새로운 생기가 느껴졌다.
“자, 오늘 밤은 제가 서빙을 담당할게요. 손님들 많이 오시겠죠?”
“하, 그럼. 난리 날 걸? 우리 레드 몽키즈에 여자 서버가 있다는 걸 알면 말이야.”
“어디 한번 두고 보시죠. 어떤 놈이 괴롭히든 혼쭐을 내줄 테니까.”
“각오는 단단한 모양이군. 한번 두고 보자고.”
크리스는 케이티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났다. 농담 속에 진심이 느껴졌다. 레드 몽키즈 클럽에서 서버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홀에는 인포테이너들이 있었고, 유명무실해진 '최후의 연주자들' 예술가 자격 유지를 위한 공연 빼고는 주로 의뢰 이야기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케이티의 열의가 크리스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순수함 속에 강인함이 엿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