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노신사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서 있었다. 케이티는 순간 얼어붙었다. 호색의 늙은이들과 달리, 그에게선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깔끔하게 다듬어진 흰 머리와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푸른 홍채 위로는 사이버 렌즈가 빛났다. 그의 눈빛은 예리하고 단호했다.
[Sinsung Corp. LEVEL 5]
노신사가 내민 블랙 카드에 새겨진 글자. (주)신성, 그 이름은 모두에게 익숙하지만, 이런 곳에서 만나기엔 낯선 이름이었다. (주)신성은 동백국의 모든 물건을 생산하는 초거대 기업으로, 작은 이쑤시개부터 자판기, 음료, 의류 등 모든 것을 만든다. 그들이 왜 하필 이곳을 찾은 걸까.
“아가씨, 이건 단순한 재생이 아니오. 자네의 재능이 필요해서 애써 찾아왔소.”
말투는 어색했지만 노신사는 진지했다. 범상치 않은 이의 기색이 역력했다. 케이티는 잠시 망설였다. 이 방문이 단순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주)신성의 제품이 흔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접촉은 또 다른 부담이었다.
“이건 특별한 재생이 필요하겠는데요…. 제가 할 수 있을지…”
“아… 그건 그런 게 아니라…. 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그 스페셜 플레이가 더 집중해서 재생자의 맥락적 해석을 더하기 때문에 훨씬 감성적이 되고 디테일이 살아나지만, 그 과정에서 케이티가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서 현실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곳의 손님 중에는 그걸 노리고 이 스페셜 플레이를 찾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예 문 앞에 두 배 가격을 붙여놨던 것이었다.
노신사를 준비된 자리에 눕히고 영화상 카드에서 피어오르는 염상에 집중했다. 화면 가득 노이즈가 가득했다. 그리고 노이즈 안의 영상. 암호화가 있었고, 해독기가 영상을 풀어냈지만 여전히 알아보기 힘들었다. 케이티는 더더욱 집중하여 노이즈 속의 맥락을 찾아냈다. 숨을 죽이며 집중한 끝에, 마침내 먼지 낀 창문이 닦이듯 장면이 열렸다.
음산한 분위기의 회의실. 그곳에선 정체 모를 모의가 오가고 있었다. 프로젝트 Z, 금고, 그리고 늙은이의 처분. 단편적인 정보가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한편으로 이사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 야망, 그리고 잔혹한 결의까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듯했다. 강렬한 인상의 파편들. 그것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진실의 조각이었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혼란과 두려움. 케이티는 숨이 막혀왔다.
트랜스 상태가 끝나고 케이티가 눈을 떴을 때, 노신사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케이티의 손에 쥐어진 묵직한 광제금화뿐. 진실은 위험하다… 노신사의 혼잣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불길한 계시처럼 다가오는 그 말에, 케이티의 심장이 요동쳤다.
광제금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봤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빛나는 표면 아래 감춰진 어둠. 그것은 자신을 덮쳐올 폭풍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던진 수수께끼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노신사의 방문이 우연일 리 없다. 중요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새우거리의 인간 비디오 재생기에게 우연히 흘러왔을 리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계기.
케이티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작은 배처럼. 그저 진실의 파편을 움켜쥐고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